
솔직히 저도 처음 곡성을 봤을 때는 '그냥 잘 만든 공포영화겠지'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저는 말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공포영화는 귀신이 나오고 놀래키는 장면으로 긴장감을 주는데, 곡성은 달랐습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공포보다는 '의심'이라는 감정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작품이었습니다.
2016년 개봉 당시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별점 5개 만점을 준 것으로도 화제가 됐는데, 그가 대중적인 한국 영화에 최고점을 주는 일은 극히 드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 역시 영화를 보고 나서 '이건 정말 다르다'는 생각을 했고, 지금까지도 곡성만큼 해석의 여지를 남긴 영화를 본 적이 없습니다.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흔들리는 서사 구조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전라남도 곡성이라는 실존하는 지역을 배경으로 합니다. 영화는 평화롭게 낚시하는 일본인 노인의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곧 그가 한국인과 시비 끝에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전환됩니다.
이후 화면은 새벽 시골마을로 바뀌고, 곽도원이 연기한 경찰 종구가 살인 사건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저는 이 초반부를 보면서 '단순한 연쇄살인 스릴러구나' 싶었는데, 영화는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마을에서 연이어 발생하는 잔혹한 살인 사건들, 그리고 건강원 주인이 산에서 목격했다는 일본인 노인의 기괴한 행동(생고라니를 뜯어먹는 장면) 등이 겹치면서 종구는 일본인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서사 구조(narrative structure)'란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과 순서를 의미하는데, 곡성은 의도적으로 정보를 숨기고 드러내면서 관객이 계속해서 판단을 번복하도록 만드는 구조를 취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제가 직접 경험한 바로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사람이 악마인가? 아니면 저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되짚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공포영화는 명확한 악역을 보여주는데, 곡성은 그 확신을 계속 흔들어놓습니다.
의심이 불러온 폭력과 선택의 연쇄
종구의 딸 효진이 원인 모를 피부병을 앓고 이상 행동을 보이자, 종구는 일본인 노인의 집을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희생자들의 사진과 딸의 실내화를 발견한 종구는 분노가 폭발해 일본인을 폭행하고 그의 집을 파괴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아, 이제 확실해졌구나. 일본인이 범인이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도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종구는 친구들과 함께 일본인을 추격해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고 시체를 유기하는 선택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이미 살인자가 되어버립니다.
여기서 '선택 편향(choice bias)'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떠오릅니다. 선택 편향이란 자신이 이미 내린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에 맞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경향을 말합니다. 종구는 일본인을 의심한 순간부터 그를 악마로 확신하게 만드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신호들은 무시합니다.
일반적으로 영화 속 주인공은 옳은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제 경험상 곡성의 종구는 계속해서 잘못된 선택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쌓여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비극을 예고한 상징과 경고들
영화에는 두 명의 초자연적 존재가 등장합니다. 황정민이 연기한 무당 일광과, 천우희가 연기한 정체불명의 무명녀입니다.
일광은 등장부터 의문을 자아냅니다. 그는 역주행으로 코너를 내려오는데, 이는 일본의 좌측통행 문화를 암시하는 장면으로 해석됩니다. 실제로 일광이 굿을 할 때 입은 옷은 일본 전통 의상인 훈도시였고,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아, 이 사람도 일본인 편이구나' 싶었습니다.
반면 무명녀는 마을을 지키려는 수호신 같은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녀는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집마다 꽃을 걸어두고, 종구에게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집에 가지 말라"는 구체적인 경고를 합니다.
여기서 '상징(symbol)'이란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요소를 뜻하는데, 곡성에서 닭울음소리는 시간의 경과이자 마지막 기회를 의미하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성경에서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한 후 닭이 울었다는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지점입니다(출처: 대한성서공회).
솔직히 저도 처음 볼 때는 무명녀가 악귀인지 수호신인지 헷갈렸습니다. 영화는 끝까지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도록 설계되어 있고, 그 혼란 자체가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여운으로 남은 질문들과 감독의 의도
종구는 결국 무명녀의 경고를 무시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일광이 "무명녀가 진짜 귀신"이라고 거짓 정보를 주었고, 종구는 딸을 구하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향한 것입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아내와 어머니는 살해당한 상태였고, 딸 효진은 칼을 들고 있었습니다. 종구 역시 딸에게 칼에 찔리며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동시에 동굴에 숨어 있던 일본인은 악마의 형상으로 변해가며 손바닥에 성흔(聖痕, stigmata)을 보여줍니다.
성흔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생긴 상처를 뜻하는데, 일반적으로 성인이나 순교자에게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곡성에서는 악마가 성흔을 보여주며 신부를 조롱하는 장면으로 사용됩니다. 이는 종교적 믿음마저 무너뜨리는 충격적인 연출입니다.
나홍진 감독은 인터뷰에서 "종구가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기다렸어도 참극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즉, 이 비극은 인간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재해와 같은 것이었다는 해석입니다.
제가 곡성을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대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눈에 보이는 증거를 믿으면 일본인이 악마 같고, 보이지 않는 신앙을 따르면 무명녀를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어느 쪽도 명확한 답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거나 명확한 교훈을 전달하는데, 곡성은 그 반대입니다. 오히려 불편함과 혼란을 남기며,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의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하면, 곡성은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니라 믿음과 의심, 선택과 후회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본 후 한동안 일상에서도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진짜 진실일까?'를 자꾸 되짚게 됐습니다. 만약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혼자보다는 함께 보고 해석을 나눠보시길 추천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 영화의 진짜 무서움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F79qeDzTtPU&list=PLepl0QPQvYWQ25BzVFkR0qNCDppFO7q1m&index=9